행사

조선왕릉문화제

서울 선릉과 정릉 / 사적 제 199호

선릉은 9대 성종과 왕비 정현왕후의 능이다. 성종은 유교 사상을 정착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사림을 성장시켜 훈구세력을 견제하고, 조선 초기 전반적인 체제를 안정시켰다. 정릉은 11대 중종의 능이다. 정릉은 원래 중종의 두 번째 왕비(제1계비) 장경왕후의 무덤인 희릉의 오른쪽 언덕에 있었으나 세 번째 왕비(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가 풍수 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서울 태릉과 강릉 / 사적 제 201호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세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능이다. 중종이 있는 정릉에 묻히려 하였으나 장마철 침수로 인하여 이곳에 묻히게되었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능이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 사적 제 207호

홍릉은 대한제국 1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 민씨의 능이다. 홍릉은 기존 조선왕릉의 형식과 다른 대한제국 황제 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유릉은 대한제국 2대 순종효황제와 첫 번째 황후 순명효 황후 민씨와 두 번째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의 능이다. 유릉은 합장릉의 형태로 한 봉분 안에 세 분을 같이 모신 동봉삼실 합장릉의 형태이다.

구리 동구릉 / 사적 제 193호

동구릉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의미이다. 1대 태조의 건원릉을 중심으로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 14대 선조와 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능인 수릉, 24대 헌종과 효현황후·계비 효정황후의 능인 경릉 등 9기의 무덤이 있다.

고양 서오릉 / 사적 제 198호

서오릉(西五陵)은 동구릉(東九陵)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5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덕종)의 묘를 처음으로 만든 이후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면서 경릉(敬陵)이라 올렸고, 이후 왕비 소혜왕후가 경릉 서쪽 언덕에 모셔졌다. 이후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창릉(昌陵 ), 19대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21대 영조의 원비인 정성왕후의 홍릉(弘陵)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고양 서삼릉 / 사적 제 200호

서삼릉(西三陵)은 희릉(禧陵), 효릉(孝陵), 예릉(睿陵) 3기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종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이 처음 들어선 이후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인 효릉, 철종과 철인황후의 능인 예릉이 들어서면서 서삼릉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삼릉에는 3기의 왕릉 이외에도 3기의 원(소경원, 의령원, 효창원)과 1묘(회묘), 왕자·공주·후궁 등의 묘 46기, 태실 54기 가 자리 잡고 있다.

여주 영릉 / 사적 제 195호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재위 1418∼1450)과 부인 소헌 왕후 심씨(1395∼1446)의 무덤이다. 세종은 정치·경제·사회· 역사·문화 등 각 분야에서 조선시대 문화의 황금기를 이룩한 왕이다.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헌릉 서쪽 언덕에 쌍실의 형태로 능을 조성하였고, 세종 32년(1450)에 왕이 세상을 떠나자 합장하였다. 이후 예종 1년(1469)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각각 다른 방을 조성하여 왕과 왕후를 모신 합장릉의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