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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나전장 송방웅
발행일 : 2021-01-21 조회수 : 3983
나전장 송방웅

1940. 9. 7. ~ 2020.7. 20. | 보유자 인정: 1990년 10월 10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나전장 송방웅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Master Artisan of Mother-of-pearl In Laying Holder

강릉 고향집 엄마방에서 / 엄마랑 낮잠 든 오후였습니다.

물너미 하나 엄마 배를 타넘어왔습니다

시집올 때 가져온 구닥다리 자개장 / 엄마만큼 늙고 병들었지만

금조개 껍데기를 썰어낸 자개들이 / 닥지닥지 붙어 있는 늙은 몸 위에서

학이 날고 / 거북이 구름 속을 슬슬 기어가더군요

소나무 타고 내려온 달이 내려온 달이 / 물속에서 첨벙, 밝아지는 몽유록

첫장을 펼치면 학이며 소나무가 / 물의 자궁 속에 둥글게 박혀 있었습니다.

바다가 오래 매만져온 금조개 / 껍데기에 스며든 바닷물 소리가

갈피갈피 접혀 있었구요

물풀 위로 산란되던 무수한 내가 / 그렁그렁 떠올라왔습니다

엄마 혼례 때 따라온 자개장 속에서 / 엄마랑 내가 흠씬 젖은 가을 오후였습니다.

- 가을 구름 물속을 간다 / 김선우 시인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있길 거부 한다면> 중]

생활공간에서 다시 살아 숨쉬는 조개껍질, 자개박이

나전(螺鈿)은 조개껍질을 가공하여 자개를 만들고, 자개로 문양을 만들어 칠면[塗面]에 장식하는 칠기장식기법이다. 나전에서 나(螺)는 나선형의 껍질을 지닌 패류(貝類)를 가리키는 동시에 장식에 쓰이는 각종 패류를 총칭하는 말로써 청패(靑貝), 야광패(夜光貝), 진주패(珍珠貝) 등을 뜻한다. 또한 전(鈿)은 금속판을 새겨 넣는 꾸밈을 의미하며 감장(嵌裝)한다는 말로써 조개껍질을 박아 장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대모(玳瑁), 상아(象牙), 호박(琥珀), 보석 따위를 새겨 넣어 장식하는 것도 나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전을 ‘자개’라는 고유어로 불러왔다. 따라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또는 ‘자개박는다’라고 일컬었다. 이 일은 대개 칠면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여 자개가 들어나게 하는 작업이라는 뜻으로 본다.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나 유물이 없고 또한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의 당나라에서 성행했던 나전칠기 제작기술이 통일신라에 전해져서 발전하였고, 그것이 고려에 와서 꽃을 피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나전장(螺鈿欌)은 나무로 짠 가구나 기물 위에 아름다운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갈아 문양을 오려 붙이고 옻칠해서 완성하는 장인이다. 그 제작과정은 나무로 기본 틀인 백골(白骨)을 짜고 그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거나 틈새를 메워 고른 뒤 자개를 올린다. 자개 작업에는 자개를 실처럼 잘게 자른 상사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드는 끊음질 기법과 얇은 판 모양의 자개로 곡선 무늬를 표현하는 줄음질 기법이 있다. 자개는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색이 곱고 질이 좋다.

전통적인 나전기법 끊음질의 대가 나전장 송방웅 선생

나전장 송방웅 선생은 1940년 9월 7일 나전칠기의 본고장인 경남 통영군 통영읍 조일정 25번지에서 부친 송주안 선생(1901~1981)과 모친 김얌지 여사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송방웅 선생은 아버지가 딸 셋을 두고 부친의 나이 40에 귀한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손자처럼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송방웅 선생은 아버지의 나전칠공예 가업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자연스럽게 나전칠공예를 보고, 느끼고, 만지며 자랐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뜻을 따라 1956년 통영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한때 문학가의 꿈을 안고 시집과 소설책들을 닥치는 대로 탐독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대학을 보낼 수 없으니 네가 예술공부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기술을 전수받아 가업을 이어가라”는 부친의 엄하신 말씀과 평소 60 고령의 부모님을 봉양해야겠다는 각오와 책임감으로 부친 송주안 선생에게 정식으로 나전칠공예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입문길에 들어섰다.

당시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거나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공장이나 작업장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는 때였으므로 고등교육까지 받고 19세의 나이로 기술을 배우는 선생에게는 여러모로 힘겨운 시간이었다. 어린 기술선배들에게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과 심부름 그리고 자존심 짓밟는 언행들을 참고 견디며 부친께 물려받은 재주와 고등교육을 받은 지혜와 안목으로 빠르게 기술을 익혀 나갔다. 29세때 부친의 문하에 입문한지 10년이 되는 날 부친 송주안 선생에게 “이제 나전칠공예 기술을 다 배운 것 같으니 스스로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창작활동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부친의 엄격한 기술교육을 바탕으로 체험과 독학으로 10년을 보내는 기간 동안 송방웅 선생은 전문서적을 필독하고 각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나전칠기 유물들을 관찰하는 등 자신의 작품세계와 정신세계를 펼쳐 나가기 위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 결과 1977년 제2회 인간문화재공예전에서 첫 출품을 하여 장려상을 수상하고 1985년 제10회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79년 부친인 송주안 선생이 79세의 고령의 나이로 국가무형유산 끊음장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1981년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로 인정받은 지 2년 만에 부친인 송주안 선생이 81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송방웅 선생은 헤아릴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교차하였다. 1990년 50세의 나이에 송방웅 선생이 선친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유산 끊음장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끊음장은 1995년 나전칠기장과 종목이 통합되어 나전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송방웅 선생은 국가무형유산 나전장으로 인정되어 작품활동과 후학 양성을 위한 전승활동에 활발한 활동을 하다 2020년 7월 20일 타계했다.

작품

고비 19×11×65cm

고비는 예부터 벽에 걸어두고 두루마리나 편지 등을 옆으로 꽂아 보관하던 것으로, 벽을 장식하는 것으로도 사용한 기물이다. 작품의 가운데 원에는 화천희지 글자를 주름질 기법으로 시문했고 원 둘레에는 끊음질 기법으로 시문했으며 원 상·하에는 도깨비 문양을 주름질 기법으로 시문하였다.

고비 19×11×65cm_01
고비 19×11×65cm_02

제작도구

나전문양의 제작도구는 끊음질 도구와 주름질 도구 그리고 끊음질과 주름질에 공통으로 사용하는도구로 구분할 수 있다. 끊음질에는 상사기, 상사칼, 거도 등이 필요하고, 주름질에는 주름질작업대, 실톱대, 실톱날, 태장대, 드릴, 자개조각도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절삭기, 다이아연마기, 나전수평기, 줄, 아교, 붓, 핀셋, 곤로, 인두, 풀솔, 칠칼 등은 끊음질이나 주름질로 나전문양을 제작할 때 공통으로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제작도구

제작과정

우선 밑바탕 작업이 선행되는데 백골제작, 백골다듬기, 생칠바르기, 나뭇결 메우기, 베 바르기, 칠죽 바르기, 칠죽면 연마하기, 기름칠하고 기름칠면을 갈기 작업을 거친다.

밑바탕 처리가 끝난 후 자개를 붙일 면에 반복문양(기하학적 문양)을 위한 치수나 송곳상사 시문을 위한 밑그림을 그린 후 부레풀(아교) 칠하기, 자개붙이기(상사놓기), 풀빼기, 자개 손보기, 도치과정, 초벌광내기, 흠집 메우기, 마감 광내기, 장석부착을 하는 단계를 거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1)부레칠하기

1)부레칠하기

2)상사 자르기

2)상사 자르기

3)본뜨기

3)본뜨기

4)활비비로 구멍 뚫기

4)활비비로 구멍 뚫기

5)상사 놓기_01

5)상사 놓기 ①

6)상사 놓기_02

6)상사 놓기 ②

약력

  • 1940년출생
  • 1980년제5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 나전칠기 우수제품 경진대회 최우수상
  • 1982년제7회 전승공예대전 문공부 장관상 수상
  • 1983년제8회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 1984년제9회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수상
  • 1985년제10회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 1986년경상남도 공예조합 이사장
  • 1989년제24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나전칠기직종 심사위원
  • 1990년국가무형유산 나전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2년~1999년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 1993년서울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이사장
  • 1995년경상남도 추천상품 심사위원
  • 1996년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 이사장
  • 2000년한국칠문화협회 부회장
  • 2001년한국전통공예특별전(중국 공예전시관) 등 다수의 해외전시
  • 2003년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 2005년경상남도 공예품 전시판매관 준공기념 3인 초대전
  • 2012년무형문화재초대전
  • 2020년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명예보유자 인정
  • 2020년별세
  • 글 이치헌 (국가유산진흥원 전승지원실장 /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 저자)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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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국화문낭경대_26x34x2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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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목침_27x12x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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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반짇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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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문-벽걸이_39.5x91x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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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방웅-선생의-부친-송주안-선생의-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