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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교육 시설

성리학을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를 주도했던 사림(士林)은 지방에 근거지를 둔 지식인 들이었다. 학문과 교육을 중시했던 이들은 지방에 사설 교육기관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서원이었다. 조선 중기에 처음 지어진 서원은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적 기능뿐만 아니라 뛰어난 선현(先賢)을 추모하는 종교적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시대의 교육기관에는 제사드리는 공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원 역시 그러한 공간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성리학적 세계관과 선비정신이 담겨 있는 서원은 독자적인 건축 형식을 갖춘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전국적으로 650여 개에 달했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인해 47개만 남게 되었으나,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9개의 서원들은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이 서원들은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경주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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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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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동서원
    • 안동
      도산서원
    •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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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서원
    • 장성
      필암서원
    • 정읍
      무성서원
    • 함양
      남계서원
    누마루를 유행시킨 서원 경주 옥산서원
    • 위치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 문의

      054-762-6567

    • 가는방법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경주행 버스 승차 → 경주고속버스터미널 하차 → ‘시외버스터미널’ 버스 정류장에서 203번(터미널.안경터미널.옥산서원) 버스 승차 → 옥산2리 정류장 하차 → 도보 5분 이동

    유학자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으로 1572년에 창건됐다.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언적은 조선의 성리학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원리에 따라 앞에는 학문을 배우는 강학 공간을, 뒤에는 사당이 있는 제향 공간을 배치하는데, 이곳 역시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다. 유학생들이 휴식을 취하던 무변루는 서원 건축에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가 도입된 최초의 사례다. 외부의 경관과 내부의 경관을 연결하는 누마루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가장 많은 책들을 보관 하고 있는 곳으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삼국사기국보』 와 조선의 경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이언적 수고본 일괄-속대학혹문보물』 등이 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1145년(고려 인종 23년)에 삼국 시대의 역사를 기전체(紀傳體)로 편찬한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함께 삼국 시대 연구의 기본사료로 인식되고 있다. 기전체는 역사 서술 체계의 하나로 역사적 인물의 개인 전기(傳記)를 이어 감으로써 한 시대의 역사를 구성하는 기술 방법이다.

    이언적 수고본 일괄-속대학혹문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이며 정치가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1547년(명종 2년)에서 1553년(명종 8년) 사이에 직접 쓴 저술 가운데 하나이다. 송의 주희가 지은 『대학혹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항목을 추가 기록한 것으로 이 책은 정조 때 경연에서 강의되었고, 정조는 친필로 ‘제선정회재속대학혹문권수’라는 제목의 머리글을 써서 내려보냈다.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제공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제공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