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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염장 조대용
발행일 : 2021-01-27 조회수 : 5488
염장 조대용

1950. 11. 3 ~ | 보유자 인정: 2001년 6월 27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염장 조대용

국가무형유산 염장
Master Artisan of Bamboo blind weaving Holder

텅 빈 누각에서 자다 일어나 문득 발을 들어보니

비 지나간 산 빛 더욱 짙어졌네.

볼수록 화공도 그려내지 못할 저 경치

높은 봉우리 구름 걷히니 푸른 꼭대기 드러나네.

- 서경덕의 『화담집』「비갠 뒤 산을 바라보네[雨後看山]」 중에서

통풍과 사적 생활공간의 확보를 가능케 하는 발[簾]

염장(簾匠)이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발은 가늘게 쪼갠 대오리나 갈대 등을 엮어서 구들이나 상방 등에 문 대신 달아 햇빛이 직접 들어오는 것을 막으면서 바람을 통하게 하는 생활용품을 가리킨다. 전통한옥에서 사용하는 발은 여름철에 강한 햇볕을 가리면서 바람은 통하게 하여 방안에 있는 사람에게 시원함을 느끼게 하며, 또한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도록 하는 가리개의 기능도 한다. 볕을 가린다는 점에서 커튼과 비슷하나, 바람이 통하고 또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커튼과는 크게 다르다.

한옥에서의 발

우리나라 가옥 구조는 방과 방 사이, 도는 대청과 방 사이를 창호로 만든 장지문으로 칸을 막아, 여름철에는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이 장지문은 들어 올릴 수 있는 들문과 밀어서 여닫는 미닫이문으로 되어 대청과 방은 언제나 한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름철에 방과 대청 사이, 대청과 마당 사이에 발을 쳐서 여름을 시원하게 지내면서도, 발의 안쪽과 바깥쪽의 명암 차이로 인해 방 안에서는 바깥쪽을 환하게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방 안이 보이지 않는 사적인 생활공간의 확보 역시 발의 매력적인 특징임에 틀림없다. 발은 여름에 문을 열고 방 안을 노출한 채 지내야 하는 한옥의 결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임금에 대한 상징적인 수식어로 사용된 발

이렇게 두 개의 공간을 분할하며 아울러 외부로부터 가려주는 동시에, 공간과 공간 사이를 완전히 밀폐하지 않고 통풍이 되도록 해 주는 기능성은 발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발은 예로부터 왕이나 귀인의 얼굴을 함부로 쳐다볼 수 없도록 하는 차면용(遮面用)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궁궐 내전(內殿) 용상(龍床)에는 발이 쳐졌으며, 이를 ‘염전(簾前)’이라 하였다. '염전‘이란 고대 이래로 궁전(宮殿)에서 발의 기능을 말해주는 것으로, 고대에는 임금 앞에는 발과 장막, 또는 휘장이 항상 드리워져 있어서 용안을 함부로 볼 수 없도록 하였던 것이다. 또한, 옛 과거제도에 벼슬에 오른 지 300일 이상 된 자를 통틀어서 소정의 시험과목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 있었는데 이를 감시(監試)라 하였다. 때로는 감시에 합격한 자들을 모아 임금이 다시 시(詩)·부(賦)·론(論)으로 친히 시험을 보았는데 임금 앞에 발이 쳐졌으므로 ‘염전중시(簾前重試)’라 하였다. 즉 임금에 대한 상징적인 수식어로 사용되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렴청정(垂簾聽政)’과 같은 뜻으로 ‘염정(簾政)’이라는 말이 있다. 대리정치의 일종으로, 섭정(攝政)을 일컫는 말이다. 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이를 도와 정사를 돌보던 일을 가르킨다. 우리 역사에서 제일 먼저 수렴청정한 것은 고구려 제6대 태조왕[太祖王, 일명 국조왕(國祖王)] 때였다. 제5대 모본왕이 두로의 손에 죽고, 태조왕이 7세로 즉위하자 태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또 조선 순조 이후에는 대개 왕이 어려 대비나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고 이 때문에 외척들의 세도정치가 성하였다. 그 시대에는 남녀의 구별이 엄한 까닭에 임금을 대신하는 여성은 발[簾]을 내리고 그 뒤에 앉아서 신하들을 대하고 정사를 처리하였으므로 ‘수렴청정’이라는 말이 나왔다.

가마에 사용된 발

가마에도 발을 쳐서 안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였는데, 이를 가마문발 혹은 가마발이라고 칭한다. 임금과 왕비가 타는 연(輦)의 좌우, 앞에 발을 드리웠으며 대오리로 엮은 발은 거북등 무늬로 장식하고 다양한 색깔의 비단을 늘어뜨려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또한, 민간에서 혼례 때 주로 사용한 사인교(四人轎)에도 발을 드리워 신부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의기(儀器)로서의 기능

사당(祠堂)의 감실(龕室)에도 발을 쳐서 외부인이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였으니 이 발은 일종에 의기(儀器)의 역할을 했다. 이렇듯 발은 공간을 구획하거나 혹은 여름철에 햇볕을 가리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는 실용적인 생활용구였으며, 왕이나 귀한 사람의 성역을 표시하는 상징적 도구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지닌 장식품이기도 하다. 보통 발을 만드는 데는 만 번 이상의 손이 가야할 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발의 종류

재료에 의한 분류

대발 : 죽렴(竹簾)이라고도 하며, 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든 발

갈대발 : 노렴(蘆簾)이라고도 하며, 갈대를 이용하여 만든 발

겉세렴 : 죽피렴(竹皮簾)이라고도 하며, 대의 껍질을 조렴질하여 무명실로 엮은 발

속세럼 : 죽세렴(竹細簾)이라고도 하며 속대를 조렴질하여 엮고 먹물로 완자무늬[卍字紋]와 문자를 도안하여 놓은 발

제작방법에 의한 분류

쪽발 : 대만 쪼개어 무명실로 엮은 다음 그림을 그려 넣은 발

기계발 : 기계로 얇게 뜨고 쪼개어 기계로 엮은 발

기능에 의한 분류

가마발 : 색실로 귀갑문을 넣어 엮어 가며, 대살은 황단(黃丹)에 채색하여 들깨 기름을 먹인 후 건조시켜 사용

한지발[韓紙簾] : 한지를 얇게 떠서 건조시키는데 사용하는 발

붓발 : 붓을 말아서 가지고 다닐 때 사용하는 발

경질(硬質) :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불교공예품

문양에 의한 분류

귀문발[龜紋簾] : 발틀 1홈에 4개 고드래에 2가닥의 실을 놓아 민발로 엮어 가다가 귀문을 엮을 자리에서 2가닥의 실이 양쪽으로 갈라져 왼쪽 1가닥과 오른쪽 1가 닥이 합쳐지고, 이 합져진 2가닥으로 민발을 엮다가 2가닥이 다시 좌우로 나뉘면서 앞서처럼 합쳐지는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귀갑(龜甲)모양의 6 각형 무늬를 엮는다. 이 기법으로 750~780cm 크기의 귀렴문(龜簾紋)을 만든 발

조형귀문발 : 귀문발과 동일하나 좀더 정교하고 문자와 완자무늬만 채색하여 엮어진 발

고문발(?紋簾) : 발에 그물모양을 엮어 장식한 발

4대째 이어온 엮음의 미학 _ 통영 대발 제작 기능보유자 조대용 선생

대발 제작하는 일을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조대용 선생은 1950년 11월 3일 통영군 광도면 노산리에서 7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대용 선생의 대발에 대한 전승계보는 지금부터 약 1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증조부인 조낙신 선생(1831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조낙신 선생은 1856년 병진 별시무과에 급제해서 통제영 부사정을 지냈다. 무과에 급제하여 직책을 기다리던 중 소일거리로 발을 엮어 철종 임금에게 진상하였는데 임금이 흡족해 매우 칭찬을 하였다고 한다. 증조부 조낙신 선생의 뒤를 이어 조부 조성윤 선생에게로 전승되었는데, 통영군 광도면이 생겼을 때 광도면의 임시 면장을 지냈다. 조성윤 선생도 부친의 발 만드는 기능을 전수받아 귀렴문(龜簾紋)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대발의 제작기능은 다시 조대용 선생의 선친 조재규 선생으로 이어졌는데, 발을 엮기 전에 도면을 그려 응용하였다. 선친 조재규 선생은 60대 중반 퇴직하였는데, 그 후 소일거리 삼아 하던 대발 일을 본격적으로 하였다. 각종 공예대회 및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다수의 수상경력을 지니고 있다.

현 보유자인 조대용 선생은 여남은 살부터 선친 조재규 선생의 일을 도우면서 어깨 너머로 일을 배웠다. 부친이 대나무를 채취할 때 함께 가지는 다듬고 고두쇠로 대오리를 뽑거나 무늬가 없는 민무늬 대발을 엮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1974년 전역(육군포병학교 조교) 후부터 본격적으로 이 일에 종사하기 시작했는데, 첫 작품은 귀문으로 된 ‘희(喜 0’자 문양의 대발이었고, 이 작품을 계기로 판매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풍기, 에어콘 등의 냉방기기와 버티컬, 커튼 등의 사용과 함께, 주거형태의 변화로 인해 전통 발의 수요가 격감하는 현실에서 발의 제작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다른 수단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발 제작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5년 부친 조재규 선생과 공동으로 제작한 대발이 제5회 전국관광민예품경진대회에서 특선을 차지하고 이후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3회, 특별상, 입선 4회, 문화부장관상 등을 거쳐 1995년에는 대통령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2001년에 국가무형유산 염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는 공예 종목의 전승자들이 그러하듯이, 선생도 발 제작에만 혼신의 힘을 다하고 싶은 것이 진정한 소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부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세탁소가 실질적인 생계수단이 되고 있다. 염장 기능보유자 조대용 선생은 늘 생각하며 제작하는 장인이다. 생필품의 하나였던 발을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발을 통풍성이 좋은 가리개라는 생필품의 차원에서, 좀 더 가늘고 고운 대오리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넣어 작품성을 갖춘 공예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넣으려면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고, 또한 점점 곱고 가늘어지는 대오리는 그 너비를 지탱할 수 없어 발이 앞으로 또 아래로 조금씩 쳐지는 현상이 생기는데 조대용 선생도 이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노력하고 있다. 과거의 기술을 습득한 장인이면서, 앞으로 한 단계 발전된 발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희자귀갑문발 [囍字龜甲紋簾] _ 135×190cm

나무의 휴면기간인 12월에 채취한 시릿대를 가지고 제작하였는데 이는 시릿대가 가늘고 탄력성이 좋아 잘 부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귀갑문을 기본문양으로 하여 쌍희자[囍]를 새겼다.

희자귀갑문발 [囍字龜甲紋簾]_135×190cm(1)
희자귀갑문발 [囍字龜甲紋簾]_135×190cm(2)
희자귀갑문발 [囍字龜甲紋簾]_135×190cm(3)
희자귀갑문발 [囍字龜甲紋簾]_135×190cm(4)

발의 제작과정

발의 재료로 사용되는 시누대는 질기고 유연하여 가늘게 쪼개도 섬유질이 가늘어 발을 엮었을 때 대[竹]마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누대는 매년 음력 11~12월 사이 채취하는데 3년생이 가장 좋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시누대를 발너비 길이로 잘라 2개월간 햇볕에 말리고 서리와 이슬 맞히기를 반복한다. 대칼로 직경 7mm 정도로 가늘게 쪼개어 양잿물에서 끓이다가 대올이 뜨거울 때 꺼내 모양을 바르게 한 다음 식힌다. 대올을 고무쇠에 넣고 굵기가 5mm 정도 되게 다듬어 발을 엮는다.

대략적인 제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나무채취-통대 쪼개기-대나무 닦기-대나무 마디 꺾기-대나무 쪼개기- 겉대 껍질 벗기기-여러 등분 나누기-속대 걷기-댓살 묶음 말리기-댓살 삶기-찬물에 식히기-대오리 만들기-대오리 뽑는 고두쇠 만들기-대오리뽑기(2, 3차 뽑기)-발 엮는 기구 만들기-고드래 만들기-고드래 걸기-시작대와 마감대 만들기-발 엮기-문양 엮기-마감대 걸기-고드래 풀기-실 나누기-가장자리 다듬기-가선 두르기-고리 만들기-시작대 감싸기-매듭 만들기-술 보충작업-술 길이 자르기

1. 대오리 뽑기

1. 대오리 뽑기

2. 고두래만들기

2. 고두래만들기

3. 고두래 걸기

3. 고두래 걸기

4. 발틀에 시작대를 올리고 고드래에 감긴 실로 묶어 고정하기

4. 발틀에 시작대를 올리고 고드래에 감긴 실로 묶어 고정하기

5. 발엮기

5. 발엮기

6. 발틀 측면모양

6. 발틀 측면모양

염장 조대용


(UHD)한국의 장인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UHD 한국의 장인 – 염장 조대용 선생 편

타이틀
‘UHD 한국의 장인’

# 경상남도 들판 전경
경상남도 통영시
# 대나무 발 모습

# 고드래 거는 조대용 선생님 모습
염장 (국가무형유산)
대나무, 갈대 등으로 발을 만드는 장인

# 고드래 엮는 모습 클로즈업

# 조대용 선생님 모습
조대용 염장 기능보유자
국가무형유산
# 걸려있는 대나무 발 모습

# 조대용 선생님 인터뷰
커튼은 저쪽과 이쪽이 가려버리지요.
시야를 가려버리고 바람도 안통하고 차단시켜 버린다고, 발은 실을 엮었기 때문에 대와 대 사이에 공간이 있잖아요. 그러니 바람이 스치고 또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고, 명암 차이에 의해서 바깥은 밝고 안은 어둡고하기 때문에

# 대나무 밭 전경
# 대나무 자르는 모습 클로즈업
# 대나무 밭 모습
# 대나무 얇게 쪼개는 조대용 선생님 모습
# 손 클로즈업
# 발 제작을 위해 얇게 다듬는 모습

# 조대용 선생님 인터뷰
전승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어떻게 보면 자부심이라 할 수 있고

# 완성 된 대나무 발 모습
# 대나무 발 클로즈업
# 대나무 발 만드는 조대용 선생님 모습
# 조대용 선생님 얼굴 클로즈업

# 조대용 선생님 인터뷰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옛날 그대로 가문과 고문을 이용해서 문양을 새기고 우리나라 발이라고 하는 것은 쓰임새 보다도 미적으로 더 좋은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공을 많이 들여서 이런 문양을 만들어 내는게 우리 발의 특징이다

# 완성 된 대나무 발 모습
# 대나무 발 클로즈업

# 작업하는 조대용 선생님 모습
염장 조대용
UHD 한국의 장인

약력

  • 1950년 출생
  • 1982년 제7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 1983년 제8회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 1990년 제15회 전승공예대전 문화부장관상
  • 1995년 제20회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 2001년 국가무형유산 염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2년 일본 교토 <한국전통문화의 향기전> 전시
  •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제작시연
  • 2003년 행정자치부 장관상 수상
  • 2010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 통영12공방 작품전
  • 2010년 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 이사장
  • 글 이치헌 / (국가유산진흥원 전승지원실장 /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 저자)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귀문염(龜紋簾)_길이180cm.jpg

귀문염(龜紋簾)_길이180cm

수복(壽福) 대발 상세.jpg

수복(壽福) 대발 상세

수복(壽福) 대발_153x178cm.jpg

수복(壽福) 대발_153x17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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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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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_355x2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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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희자 귀문발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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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희자 귀문발_135x1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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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 문발 상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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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 문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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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 문발_140x18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