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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갓일 김인
발행일 : 2020-12-19 조회수 : 3617
갓일 김인

1920. 2. 16 ~ 2015. 7. 22. | 보유자 인정: 1985년 2월 1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갓일 김인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Master Artisan of Horsehair Hat Making

한국의 갓은 무엇보다 가볍고도 무거운데 그 특징이 있다. 인류가 만든 모자 가운데 갓만큼 가장 가볍고 가장 엄숙하면서도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도 없을 것이다.

갓이 표현하는 의미는 실용성도 심미적인 장식성도 아닌 일종의 점잖음을 보여주는 도덕성이다.

갓 쓰고 망신당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것은 쓴 사람의 인격이나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 하나의 기호이다.

남자의, 선비의, 양반의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으로써 사람 전체의 몸을 기호로 바꿔놓은 작용을 한다(…)

갓, 그것은 한국인의 이념이 물질 그 자체로 응집되어 있는 ‘머리의 언어’이다.

- 우리문화 박물지(이어령 저, 디자인하우스, 2007)

갓, 쓴 사람의 인격과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

갓으로 불리는 흑립(黑笠)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백의(白衣)와 대비되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신분을 상징하고 있다. 전통사회의 성인남성의 격은 갓을 갖추어 썼을 때라야 비로소 완성된다. ‘의관을 정제한다’는 말처럼 평소에 성인 남성이 바깥출입을 할 때 의례 도포와 갓을 갖추어 쓰게 마련이었다. 방을 나설 때부터 착용하여 실내에서도 벗지 않았을 뿐더러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비로소 벗는 것이 상례였다. 흰색 도포자락에 짙은 먹빛의 반그늘이 지는 갓이 절제되지만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갖춰 쓴 이의 품격을 유감없이 대별할 수 있었다.

성인 남성의 필수품

갓은 고려시대에 서민들이 즐겨 쓰던 패랭이 (平凉子)에서 유래되어 조선시대에는 한층 양식미를 갖춘 공예품으로 발전하였다. 갓을 제작하는 공정은 크게 세 가지 기능으로 구분한다. 우선 갓 대우(대우는 갓의 모자 부분을 일컫는 순수한 국어로서, 모정아[帽頂兒]라고 부르기도 한다)부분을 말총으로 엮는 총모자장(?帽子匠), 대올을 실낱처럼 떠서 차양부분을 얽어내는 양태장(?太匠),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해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입자장(笠子匠)이 그것이다. 이 세 기능은 서로 재료가 다르고 솜씨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지를 달리하거나, 혹은 한 공방에서 분업적인 협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총모자장, 양태장, 입자장의 기능을 일괄해 ‘갓일’이라는 명칭으로 묶어 국가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물론, 그 용어가 전래의 것은 아니며 제작소 내지 판매점을 갓방(笠房)이라 부를 뿐, 전 공정을 통괄하는 일의 명칭은 따로 없었던 듯하다.

지금의 갓은 대체로 조선시대 전기에 정형화되고 그 사용이 점차 일반화되어 사류(士類)의 가장 애용하는 바가 되었다. 동국의관(東國衣冠)은 갓과 도포(道袍)를 말하는데 그 양식미는 세계의 어느 의관보다도 우월하다고 하겠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까지 우리나라의 성인 남자들은 평상시에 도포에 갓을 갖추어야 비로소 문밖출입을 할 수 있었다. 각지의 명산지에서 제작과 판매를 담당하고 시장에서도 판매하였기에 도매상과 소매상이 전국을 누비던 것이 당시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값이 워낙에 비싸서 낡았다고 하여 쉽게 새것으로 바꿀 엄두가 나지 않는 물건이기도 했다. 따라서 구멍이 나고 헤져도 부분적으로 수리해 쓰는 것이 일반화된 습관이어서 지방에는 곳곳에 수리공이 성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발령이 내리고 의습이 서구식으로 바뀌고 난 뒤에는 지방의 노인들 말고는 찾는 이가 급격히 줄면서 갓일도 침체일로에 접어들었다. 갓일은 1964년 12월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문화재보호법이 생기고 가장 먼저 지정한 공예기술 분야로 기록된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갓일의 제작공정

갓일은 갓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말하지만, 갓을 완성하는 데는 총모자, 양태, 입자 분야의 기술이 협업을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김인 선생은 이 가운데서도 총모자 분야의 기능보유자이며, 말꼬리 털 또는 목덜미털을 써서 컵을 엎어 놓은 듯한 형태의 갓 모자 부분을 담당한다. 양태장은 대나무 오리를 가늘게 쪼개어 모자의 차양부분에 해당하는 양태를 제작하고, 이 두 가지 부품을 하나로 모아 갓을 완성하는 기능이 바로 입자장의 영역이다.

총모자: 갓일(총모자장) 기능보유자 김인 선생의 작품

총모자: 갓일(총모자장) 기능보유자 김인 선생의 작품

양태: 갓일(양태장) 기능보유자 장순자 선생의 작품

양태: 갓일(양태장) 기능보유자 장순자 선생의 작품

완성된 갓(통영 갓): 갓일(입자장) 기능보유자 정춘모 선생의 작품

완성된 갓(통영 갓): 갓일(입자장) 기능보유자 정춘모 선생의 작품

완성된 갓(박쥐문양갓): 갓일(입자장) 기능보유자 박창영 선생의 작품

완성된 갓(박쥐문양갓): 갓일(입자장) 기능보유자 박창영 선생의 작품

※ 명예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 제도는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그야말로 명예로운 지위다. 문화재청이 2001년 3월에 제도를 마련하고 2005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명예보유자제도는 연로하고 병마로 더 이상 현장에서 예전처럼 전수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그 직무로부터 벗어나 남은 생을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게 배려한 조치이다. 명예보유자 인정제도는 평생을 우리 문화유산을 위해 헌신해 온 보유자들의 명예와 앞으로의 활동을 보장해 주고,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들 간의 안정적인 세대교체와 전승현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두 가지 실효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제주 말총공예의 전승을 이어

김인 선생은 1920년 음력 2월 16일 제주시 덕지(현 제주시 이호동의 자연마을인 현사동의 다른 이름)에서 태어났다. 반농반어의 가정이어서 젊어서는 해녀 일을 주로 했다. 1970년대 초까지는 가내 수공업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총모자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본격적으로 총모자 제작 일을 하게 된 것은 1세대 갓일 보유자인 오송죽 선생(1907~1984)과 함께 기거하면서부터이다. 평소의 품성이 밝고 따뜻하며 친화력도 좋아서 자랄 때부터 집에는 항상 또래의 친구들이 대여섯 명씩 모여 들었다고 한다. 김인 선생은 제주 한라문화축제나 섬축제 등에 꾸준히 참여하여 제주 지역의 말총공예의 진작에 노력하여 왔다. 어릴 적부터 솜씨가 좋다는 평을 줄곧 들어온 선생은 머지않아 총모자 제작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멀리서도 선생의 작품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면서 선생의 명성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되었고 마침내 1985년 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갓일(총모자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90세의 고령에 달한 2009년에 평생을 전업으로 몰입해 왔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보유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15년 타계했다. 선생의 총모자 제작기술은 딸인 강순자 선생이 이어받아 2009년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보유자로 인정되어 활발한 전승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명예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 제도는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그야말로 명예로운 지위다. 문화재청이 2001년 3월에 제도를 마련하고 2005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명예보유자제도는 연로하고 병마로 더 이상 현장에서 예전처럼 전수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그 직무로부터 벗어나 남은 생을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게 배려한 조치이다. 명예보유자 인정제도는 평생을 우리 문화유산을 위해 헌신해 온 보유자들의 명예와 앞으로의 활동을 보장해 주고,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들 간의 안정적인 세대교체와 전승현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두 가지 실효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작품

하단 내용 참조
총모자

김인 선생의 작품은 모두 과거 전통사회의 갓의 풍모와 가장 근접한 형식미를 갖추었다는 평이다. 단순한 형태를 세련되게 완성하는 일이 오히려 복합한 형태를 만드는 이보다 어렵다고 한다. 단순한 형태는 기능의 숙련도와 작품의 밀도가 일치하지 않으면 결코 높은 평가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생을 하루같이 한길만을 걸어온 노장인의 모습은 차라리 한 사람의 구도자의 풍모에 가깝다. 이것이 우리가 존경해 마땅한 참 장인다운 길이다.

총모자, 김인, 12X15X14cm

김인 선생이 사용하던 작업도구

말총

말총

일골과 골걸이

일골과 골걸이

말총: 갓의 대우 부분에 사용되는 재료다. 대우를 만들 때 날줄은 길이가 긴 말총을 많이 사용하고 길이에 구애를 받지 않은 절임줄은 쇠꼬리털을 많이 사용한다.

일골(총모자골):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형태는 아래가 넓고 위는 사다리꼴처럼 줄어드는 변형 원통의 모양이다. 뒤집어 보면 윗면쪽은 막혀 있지만 바닥쪽은 바깥부분의 2cm, 안쪽으로 7.2cm정도 깊이의 둥근 홈이 패어 있다. 이렇게 패인 곳은 주개판 위에 올려 놓고 대우를 엮어가는 작업을 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다. 일골의 표면에는 어교가 묻어 있는데 말총으로 연결하여 모자의 시작 부분에 해당되는 생이방석을 만든 다음 결어갈 때 불에 녹여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골걸이(주개판): 총모자를 결을 때 주개판 위에 일골을 돌려가면서 짤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판의 꼭대기는 둥글게 굴려져 있다. 주개판 위에 일골을 걸었을 때, 일골 안쪽에 패인 홈이 주개판 위에서 빙 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양자 사이의 빈 공간에는 헌 헝겊을 넣어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 일골 위의 말총을 한 코씩 잡아채서 새뜨기를 할 때 사용하는 총바늘과 먹칠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먹골과 석죽, 먹사발과 먹솔 등이 사용된다.

약력

  • 1920년 제주시 출생
  • 1980년 제5회 전승공예대전 입선(그외 6, 9회 입선)
  •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갓일(총모자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3년 붇다(붇다 제주 중앙클럽 주관) 대상
  • 2009년 국가무형문화재 갓일 명예보유자 인정
  • 2015년 별세
  • 글 이치헌 (한국문화재재단 한국무형문화재진흥센터센터장 /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 저자)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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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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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모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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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모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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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골과 총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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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 모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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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 모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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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중 모습(3)